3·1 운동
- 시대
- 일제강점기
- 연대 요약
- 1919년 3월 1일 (표준 용어는 '3·1 운동')
- 줄기 위치
- A17 ·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
- 자료 성격
- 자국 기록이 풍부한 주제
영상 주소: (유튜브 주소 입력 예정)
해설
영상 자막으로 쓴 문장 그대로입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합니다. 독립선언서는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 사람은 자주민임을 선언했습니다. 같은 날 탑골공원에서도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만세 시위가 시작됩니다.
일제의 탄압에도 시위는 전국과 해외로 퍼져 나갔습니다. 3·1 운동은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습니다. 그해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사료 구절과 출처
아래 구절과 설명은 온라인에 공개된 판본과 기관 누리집에서 대조한 것입니다. 정식 교감본·인쇄본과의 글자 차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독립선언서 (위키문헌 「기미독립선언서」)
- 첫 문장: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 날짜: 「朝鮮建國 四千二百五十二年 三月 一日」 — 현대의 연도로는 1919년 3월 1일입니다.
- 해설의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 사람은 자주민임을 선언했습니다"는 위 첫 문장을 현대어로 풀이한 것입니다.
태화관과 탑골공원 (국가기록원 뉴스레터 제122호 「3.1절」)
- 민족대표는 원래 탑골공원에서 낭독하기로 했으나 일제의 무력진압을 우려해 인사동 태화관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 탑골공원에서는 학생·시민이 독립선언서를 스스로 낭독한 뒤 종로·서울역·정동·이화학당·서대문 등으로 행진했습니다(3·1 운동의 발상지).
전국과 해외로의 확산 (국가기록원 뉴스레터)
- "이후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해외에도 퍼졌다. 일제는 이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
- 참가자·사망자 수는 자료마다 범위가 크게 달라 이 글에서는 단일 수치로 쓰지 않습니다.
임시정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임시정부」, 위키문헌 「대한민국 임시헌장」)
-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이 구성되고,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헌장」을 반포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장소는 상하이입니다.
- 수립일은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았습니다(이전에는 4월 13일). 임시헌장의 날짜란은 「대한민국 원년 4월 일」로 일(日)이 비어 있어, 4월 11일은 대백과의 서술을 따른 것입니다.
용어·표기 설명
- 표준 용어는 '3·1 운동'입니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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