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
- 시대
- 개항기·대한제국
- 연대 요약
-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감옥에서 순국, 『동양평화론』은 미완성으로 남음
- 줄기 위치
- A16 · 개항과 근대
- 자료 성격
- 자국 기록이 풍부한 주제
영상 주소: (유튜브 주소 입력 예정)
해설
영상 자막으로 쓴 문장 그대로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습니다. 안중근은 하늘을 향해 대한 만세를 세 번 불렀다고 『안응칠 역사』에 적었습니다. 1910년 2월 14일, 일본 법원은 뤼순에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 서문에서 하얼빈에서 의로운 싸움을 열고 뤼순을 담판의 자리로 정했다고 적었습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동양평화론』은 사형 집행으로 미완성인 채 남았습니다.
사료 구절과 출처
아래 구절과 설명은 온라인에 공개된 판본과 기관 누리집에서 대조한 것입니다. 정식 교감본·인쇄본과의 글자 차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안응칠 역사』 (위키문헌 「안응칠 역사」)
- 「이때가 바로 1909년 음력 9월 13일 상오 9시 반쯤이었다.」 (의거 시각을 적은 대목. 양력 10월 26일은 독립기념관의 서술을 따릅니다.)
- 「나는 곧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대한 만세를 세 번 부른 다음, 정거장 헌병 파견대로 끌려갔다.」
『동양평화론』 서문 (위키문헌 「동양평화론」)
- 「1910년 경술 2월(음) 대한국인 안중근 여순(旅順) 옥중에서 쓰다」
- 「그래서 나는 동양 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얼빈에서 개전하고, 담판(談判)하는 자리를 뤼쑨(旅順)으로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바이다.」
- 위키문헌의 해당 페이지에는 서문과 전감만 있습니다.
일시
-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독립기념관 매거진 글에 "10월 26일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 1910년 3월 26일 순국: 독립기념관 글에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감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료에 따라 시각 표기가 조금 다르므로 '오전 10시'까지만 씁니다.
- 미완성: 독립기념관 글에 "사형 집행이 당겨지면서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용어·표기 설명
- '처단'과 '순국'은 독립기념관의 표기를 따랐습니다.
- 뤼순(旅順)은 한국 정부의 표기이며, 위키문헌 원문은 '뤼쑨'으로 적고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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