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과 살수대첩
- 시대
- 삼국·가야
- 연대 요약
- 612년, 수나라 군대가 살수(지금의 청천강으로 보는 것이 통설)에서 크게 패함(살수대첩)
- 줄기 위치
- A07 · 수·당과의 전쟁, 삼국 통일
- 자료 성격
- 자국 기록이 풍부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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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영상 자막으로 쓴 문장 그대로입니다.
612년,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을지문덕은 거짓으로 항복하며 수나라 군의 형세를 살폈습니다. 싸울 때마다 달아나며 수나라 군대를 지치게 했습니다.
7월, 수나라 군대가 살수를 건널 때 고구려군이 뒤를 쳤습니다. 요하를 건넌 30만 5천 명 가운데 요동성으로 돌아간 사람은 2,700명이었다고 삼국사기는 전합니다. 이것이 살수대첩입니다.
사료 구절과 출처
아래 구절과 설명은 온라인에 공개된 판본과 기관 누리집에서 대조한 것입니다. 정식 교감본·인쇄본과의 글자 차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삼국사기』 권20 고구려본기 영양왕 22~23년
- 「二十二年,春二月,煬帝下詔,討高句麗。」 — 22년 2월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침.
- 「凡一百十三萬三千八百人,號二百萬。」 — 총 1,133,800명, 200만이라 일컬음.
- 「王遣大臣乙支文德,詣其營詐降,實欲觀虛實。」 — 을지문덕이 적 군영에 거짓 항복하여 허실을 살핌.
- 「文德見述軍士有饑色,故欲疲之,每戰輒走。」 — 우문술 군사가 굶주린 기색이라 지치게 하려고 싸울 때마다 달아남.
- 「秋七月,至薩水,軍半濟,我軍自後擊其後軍,右屯衛將軍辛世雄戰死。」 — 7월 살수에서 수 군이 반쯤 건넜을 때 뒤를 침.
- 「初,九軍到度遼,凡三十萬五千,及還至遼東城,唯二千七百人,資儲器械巨萬計,失亡蕩盡。」 — 요하를 건넌 9군 30만 5천 가운데 요동성으로 돌아간 것은 2,700명.
『수서』 권4 양제기 하 대업 8년
- 「總一百一十三萬三千八百,號二百萬,其餽運者倍之。」
- 「七月壬寅,宇文述等敗績于薩水,右屯衞將軍辛世雄死之。」
- 「九軍並陷,將帥奔還亡者二千餘騎。」
용어·표기 설명
수치와 표기에 대하여
- 돌아온 군사의 수는 『삼국사기』가 "2,700명"으로 적고, 『수서』는 "亡者二千餘騎"라고 표현이 달라 두 수치를 직접 견주기 어렵습니다. 해설은 『삼국사기』의 수치만 쓰고 출처를 밝혔습니다.
- 사료 문장에는 서기 연도가 없습니다. 영양왕 23년·대업 8년을 서기 612년으로 보는 것은 통설에 따른 환산입니다. 대업 원년이 605년이므로 대업 8년은 612년입니다.
- 살수를 청천강으로 보는 것은 한국의 통설이며, 사료 문장이 직접 밝히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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