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나무 › A04 북부여·옥저·동예·삼한, 여러 나라의 시대
다호리 붓: 2천 년 전 글쓰기의 증거
- 시대
- 선사·고조선·초기국가
- 연대 요약
-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원 다호리 유적 발굴 시작. 1호 무덤 대바구니의 껴묻거리에 붓, 함께 나온 손칼(삭도)은 목간 글자를 깎는 지우개로 해석(우리역사넷). 연대 기원전 1세기 무렵, 주인은 변한의 지배자로 설명
- 줄기 위치
- A04 · 북부여·옥저·동예·삼한, 여러 나라의 시대
- 자료 성격
- 외국 기록 중심이거나 일부만 확인된 주제
영상 주소: (유튜브 주소 입력 예정)
해설
영상 자막으로 쓴 문장 그대로입니다.
경남 창원 다호리의 무덤에서, 붓이 나왔습니다.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다호리 유적 발굴을 시작했습니다. 1호 무덤의 대바구니 안에는 검과 청동거울, 오수전, 붓 같은 껴묻거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붓과 함께 나온 작은 손칼, 삭도는 목간의 글자를 깎아 지우는 지우개로 봅니다. 이 무덤은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합니다. 무덤의 주인은 문자를 사용하고 철로 교역한 변한의 지배자로 설명됩니다.
다만 어떤 글을 썼는지는 이 자료들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사료 구절과 출처
아래 구절과 설명은 온라인에 공개된 판본과 기관 누리집에서 대조한 것입니다. 정식 교감본·인쇄본과의 글자 차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직접 확인한 원문 구절
- (1) 「창원 다호리 유적, 1988년 발굴, 초기철기시대」 「1988년 1월의 어느 겨울날 …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유적이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 땅을 파고 안을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관을 들어내자 무덤 바닥 가운데에 구덩이를 파고 묻은 대바구니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검과 검집, 청동창, 청동거울, 허리띠 장식, 청동방울, 철도끼, 철손칼, 오수전(五銖錢), 붓 등 다양한 껴묻거리[副葬品]가 담겨 있었습니다.」
- (2) 「지난 1988년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1990년까지 여덟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졌던 다호리 유적 1호묘」
- (4) 「1988년부터 1991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6차에 걸쳐 발굴조사되어 널무덤〔木棺墓〕총 44기가 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의 연대는 제1호분의 경우 출토된 성운경·오수전 등으로 보아 서기전 1세기 후반으로 생각된다」 「출토유물 중 붓과 손칼은 연필과 지우개같은 문방구 역할을 한 것으로 교역시 영수증 작성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사적 지정 1988.09.03.
영상 문장별 근거
| # | 해설 문장 | 근거 |
|---|---|---|
| 1 | 경남 창원 다호리의 무덤에서 붓이 나왔습니다 | (1) 대바구니 안 껴묻거리에 「붓」; (4)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 |
| 2 |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다호리 유적 발굴을 시작했습니다 | (1) 「1988년 발굴」, (2) 「1988년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
| 3 | 1호 무덤의 대바구니 안에는 검과 청동거울, 오수전, 붓 같은 껴묻거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 (1) 위 구절 |
| 4 | 붓과 함께 나온 작은 손칼, 삭도는 목간의 글자를 깎아 지우는 지우개로 봅니다 | (3) |
| 5 | 이 무덤은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합니다 | (3) 「기원전 1세기대」, (4) 「서기전 1세기 후반으로 생각된다」 |
| 6 | 무덤의 주인은 문자를 사용하고 철로 교역한 변한의 지배자로 설명됩니다 | (3) 「문자를 사용하고, 철을 매개로 교역을 하는 지적인 지배자」「변한의 지배자」 |
| 7 | 다만 어떤 글을 썼는지는 이 자료들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 위 자료 어디에도 쓴 글의 내용·문자 종류 서술이 없음 |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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