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나무 › A02 청동기와 고인돌, 부족에서 나라로

청동기 시대 벼농사와 마을

시대
선사·고조선·초기국가
연대 요약
부여 송국리 청동기 집터 유적에서 탄화된 벼·기장·조·콩·팥 확인(14차 발굴 수혈). 농경 비중은 이전보다 높아졌으나 사냥·어로·채집 병행. 산성 토양이라 유기물 보존 어려움
줄기 위치
A02 · 청동기와 고인돌, 부족에서 나라로
자료 성격
외국 기록 중심이거나 일부만 확인된 주제

영상 주소: (유튜브 주소 입력 예정)

해설

영상 자막으로 쓴 문장 그대로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부여 송국리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마을 유적입니다. 송국리 문화는 기원전 9세기부터 5세기 정도까지로 봅니다.

이곳에서는 집터 100기 이상이 확인되었습니다. 토기 안에 쌀이 담긴 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송국리의 탄화미는 기원전 6~5세기경으로 밝혀졌습니다.

농경이 발달하고 마을이 커지면서 사회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료 구절과 출처

아래 구절과 설명은 온라인에 공개된 판본과 기관 누리집에서 대조한 것입니다. 정식 교감본·인쇄본과의 글자 차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영상에 쓴 사실과 원문 구절

사실출처(기관·페이지)원문 구절
송국리 문화 기원전 9세기~5세기 정도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부여 송국리 돌널무덤 출토품으로 본 청동기시대) museum.go.kr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15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때 후반부를 대표하는 문화(대개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 정도까지)"
집터 100기 이상같은 페이지"송국리 유적에서는 현재까지 100기 이상의 집자리가 확인되었습니다."
토기 안에 쌀같은 페이지"이런 형태의 토기에 쌀이 보관된 채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송국리 탄화미 기원전 6~5세기경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한국문화사 '탄화미'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는 기원전 6∼5세기경으로 밝혀졌고"
청동기 시대 벼농사 본격화우리역사넷 '청동기시대의 벼농사' (km_026_0030_0020_0040)벼농사가 본격화된 시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요약 열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2026) 사진설명(세계일보 2026-06-30 보도 경유):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출토된 불탄 볍씨"
농경 발달·마을 성장→사회 분화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 선사·고대관 '고조선·부여·삼한' 안내"청동기시대 농경의 발달과 마을의 성장은 사회 분화를 촉진했다."
송국리=대표 마을 유적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소장품 페이지(후반부를 대표하는 문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황재훈, 한국학중앙연구원): "벼농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 중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농경 취락"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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