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암사동, 6천 년 전 마을
- 시대
- 선사·고조선·초기국가
- 연대 요약
- 국내 신석기 유적 중 최대 규모 마을 유적. 1979 사적 제267호. 움집 거주(작은 움집 2~3명, 큰 움집 5~6명 추정), 출토 토기의 약 90%가 뾰족밑 빗살무늬토기, 탄화 도토리·그물추 발견. 1925 을축년 대홍수 때 토기 조각이 드러나 알려짐. 연대: 서울시 약 6,000년 전 / 강동구청 기원전 4~3천년경
- 줄기 위치
- A01 ·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다
- 자료 성격
- 외국 기록 중심이거나 일부만 확인된 주제
영상 주소: (유튜브 주소 입력 예정)
해설
영상 자막으로 쓴 문장 그대로입니다.
서울 강동구 한강가에 약 6천 년 전 신석기 마을이 있었습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드러나 알려졌습니다. 1979년 사적 제26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강동구 자료는 이 마을을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 무렵으로 추정합니다. 사람들은 지름 4~6m쯤 되는 움집에 살았습니다. 작은 집에는 두세 명, 큰 집에는 대여섯 명이 살았다고 추정합니다.
빗살무늬토기와 돌화살촉, 그물추와 작살이 함께 나왔습니다.
사료 구절과 출처
아래 구절과 설명은 온라인에 공개된 판본과 기관 누리집에서 대조한 것입니다. 정식 교감본·인쇄본과의 글자 차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확인표
- 약 6천 년 전 신석기 마을, 서울 강동구 한강변 | 서울시 미디어허브 「무려 6,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 | 원문 확인(서울시 기사)
- 1925 을축년 홍수에 빗살무늬토기 조각 노출 | 강동문화포털 「1925년 을축년 홍수 때 … 수많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노출되면서」 | 원문 확인
- 1979.7.26 사적 제267호 | 강동문화포털 「1979년 7월 26일 사적 제 267호로 지정」 | 원문 확인
- 기원전 4000~3000년 무렵 | 강동문화포털 역사속 변천사 「기원전 4000~3000년 경」 | 원문 확인(강동구 자료 표기)
- 움집 지름 4~6m | 강동문화포털 「직경 4∼6m 크기의 원형이나 모를 죽인 방형의 구덩이」 | 원문 확인
- 작은 움집 2~3명, 큰 움집 5~6명 추정 | 강동문화포털 「작은 움집은 2~3명, 큰 움집은 5~6명 … 추정」 | 원문 확인(추정으로 서술)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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